선배는 어떻게 취업을 하셨어요? 어떻게 그 회사로 가게 되신거에요?
감사하게도 모교의 취업 지원팀, 혹은 취업 관련 행사를 통해 멘토로써 후배들에게 취업과 관련해서 나눌 수 있는 기회들이 있는데, 그 때마다 빠지지 않고 받는 질문이다. 당신은 어떻게 취업을 했느냐. 그리고 나에게는 실제로 어떻게 취업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두 가지 답변이 있다: (1) 공식 답변, 그리고 (2) (사적인) 진짜 답변.
(1) 공식 답변
진짜 답변이 있다고 하니 공식 답변은 진짜 이야기가 아닐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진실된 나의 이야기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진로 선택에 있어 소거법을 활용했다. 나는 경영학과를 나왔는데, 경영학과 내에서도 마케팅, 인사/조직, 생산, 재무, 회계, MIS, 통계 등 세부 진로가 너무나도 많았다. 아직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특별하게 잘 하는것도 못 하는 것도 없는 generalist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잘 하는 것 못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도 비교적 명확하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이것은 진로를 정해야 하는 20대 때에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은데, 내 주변에는 대학교 1,2학년 때 부터 자신이 갈 길이 명확한 specialist 친구들이많았다. 대학교 1,2학년 때부터 회계사, 로스쿨 등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가는 친구들을 보면 조바심이 나기 일쑤였다.
그래서 군대를 다녀온 대학교 3학년 때부터는 모든 과목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모든 과목을 열심히 해봐야만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못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하지 않고 잘 하는 경우는 적어도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았기에, 내가 잘 하는지 못 하는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열심히 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어차피 특별히 좋아하는 과목이 없었기에, 어떠한 길을 선택해도 큰 상관이 없었다.
그래도 어차피 선택할 길이라면 잘 하는 분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진로를 찾아가는 대학교 3학년 때에는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들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결과 모든 과목이 A가 나왔지만, 또 반대로 모든 과목이 A+가 나오진 않았다.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없을 것 같이 공부한 과목임에도 A0, A-가 나오는 과목들이 있었다. 그리고 과감하게 그 과목들을 나의 진로에서 제외했다.
그렇게 최선을 다 한 결과 모든 과목에서 A+를 기록한 유일한 과목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마케팅이었다. 열심히 한 것에 대한 결과가 내 손에 있었기에 나는 비교적 확신을 가지고 그 이후 마케팅 학회, 마케팅 인턴을 거쳐 마케터로 나의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최선을 다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모든 과목을 공부해 봤기에, 가장 성적이 좋은 과목이었던 마케팅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불안함이 없었다.
그래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하는지 모른다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곤 한다.
정말 모르면 일단 해보라고. 단, 최선을 다 해보라고. 그러면 그 중에 잘 하는 것이 하나쯤은 나온다고.
(2) 진짜 답변
사실 이 이야기를 공유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공유했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 블로그와 유튜브 운영의 목적이었는데, 이 내용은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일지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 직장동료를 운영하는 상은이 나의 진실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더 울림이 있을 것이라는 용기를 주어 공유를 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일전에 '최고의 직장 상사'에서 나누었던 나의 멘토 형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3분 30초까지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j4E8Y-xo-w&t=3s
나의 20대의 유일한 꿈은 내 멘토를 닮는 인생을 사는 것이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내 멘토의 반이라도 닮았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링크 영상에 보다 자세하게 담겨있지만 내 멘토님 자랑을 한 번 더 하자면, 나의 멘토님은 직장에서 만난 사람을 사랑으로 대해주는 분이었다. 조금이라도 직장 생활을 해보면 알겠지만, 직장에서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따라 대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특히나 직장이라는 환경에서, 능력의 높고 낮음에 따라 사람을 대하지 않고, 사랑으로 구성원들을 대하는 그 분을 보고 나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나도 그런 멋진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결심했다.
나는 그처럼 살고싶었기에 그의 인성적인 측면도 모방하려 노력했고, 그의 커리어 또한 모방의 대상이었다. 나의 직업적 소망은 그 분 아래에서 근무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4학년이 되자마자 취업을 준비하면서 나는 그 분이 다니고 있는 국내 대기업에 지원했으나 보기좋게 낙방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의 향수라도 느끼기 위해 그가 대학생 시절 마케팅 트레이니로 거쳐간 회사인 P&G라는 곳에 지원하게 되었다.
내가 지원할 당시 P&G는 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채용에서 마케팅 인턴 포지션 1자리만 채용하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혹은 어쩌면 운명처럼) 그 자리에 내가 붙을 수 있었고, 들어가보니 전환형 인턴이라 프로젝트를 잘 하면 취업 오퍼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는 자리였다. 멘토님과 같이 일 할 수 있는 기회는 나의 탈락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지만, 멘토님이 선택한 회사라면 틀림없이 좋은 회사일 것이라는 생각과, 이 회사에 떨어지면 멘토가 거쳐간 회사는 갈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에 정말 최선을 다해서 인턴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영상에 담겨있는데, 약 3개월 인턴을 하는 동안 매일 잠을 2시간 정도만 자서 구내염이 심각해서 밥도 못 먹고 양치도 못하는 수준으로 일을 했다.) 그렇게 절박한 마음으로 죽기 살기로 인턴십을 수행한 결과, 감사하게도 정규직 오퍼를 받을 수 있었다.
멋진 한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을 닮고 싶었고,
닮기 위해 그 사람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니 취업이 되었다.
이것이 나의 취업 이야기의 사실상 모든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P&G에서 마케터로 내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커리어가 지금은 IT / 광고 영업 직무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내가 지원할 당시 P&G에 열려있던 단 하나의 포지션이 마케팅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아마 앞으로도 마케팅/영업 백그라운드를 활용해서 살아갈 것이기에, 그 당시 선택이 나의 긴 인생의 항로를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첨언하자면, 내가 인턴으로 지원할 당시 나에게 직무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멘토가 거쳐간 회사라면 어떤 업무도 감사하게 수행할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지원했기에, 어쩌면 그 당시 열려있던 직무가 다른 직무였다면 나는 지금 마케팅이 아닌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케팅으로 나의 진로를 대략적으로 정했지만 그 적성보다 더 강력한 동기부여는 내 멘토를 닮은 삶을 사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나의 솔직한 취업의 이야기이다. 취업을 고민하면서 나만의 적성을 찾지 못해 고민인 사람들에게, 적성이 아닌 다른 방법이나 계기로 취업할 수도 있다는 것에서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반드시 적성이 아니어도 좋다. 당신이 못할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대한 오기로, 어쩌면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이유로, 혹은 어릴적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취업을 하더라도 그것이 모두 옳다. 그것이 당신의 진실된 동기부여라면.
여러분의 취업/이직을 응원합니다! 혹시 취업해야 할 거창한 이유가 없어 고민인가요? 회사에 들어가고자 하는 거창한 이유도, 적성도 없이 취업하게 된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조금이나마 취업의 이유에 작은 힌트 혹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t629grfGgG8&t=25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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